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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독서

팩트풀니스

루키~ 2021. 10. 6. 08:10

미니서평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똑똑한 사람들조차도 세상을 오해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에 대해서 정리한 '팩트풀니스'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맺음말에서 한스가 췌장암으로 죽기전까지 이 책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마치 영화의 극적인 반전처럼 놀라움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까지 이 책을 쓴 이유는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데이터, 즉 사실에 기반해 알려주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누구나 하루아침에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까? 큰 변화는 언제나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하며, 나는 두 가지 단순한 이유에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정확한 GPS가 길 찾기에 더욱 유용하듯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삶을 향해하는 데 더욱 유용하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둘째 이유는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다는 것이다. 
대단히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적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먼저 세계를 두 집단(우리, 그들)으로 나누지 않고, 소득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네 단계 소득수준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각화를 책에서 내내 보여준다. 
시각화는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단 한장의 도식화된 그림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잘 활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보인다. 
특히, 데이터를 진실을 말하는데 사용해야 하며, 행동을 촉구하는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다급함 때문에 데이터를 왜곡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해석된다. 
오히려 충분한 검토를 거친 왜곡되지 않은 데이터라면 행동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데이터는 절대적인 열쇠였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어서 데이터의 신뢰성과 그 데이터 생산자의 신뢰성을 보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데이터를 절대 100% 신뢰하지 않는다. 독자도 그래야 한다. 
불확실성은 늘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도 수치는 얼추 맞겠지만, 작은 차이에 근거해 속단해서는 안 된다. 
통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한 가지 훌륭한 일반 원칙은 차이가 10% 정도로 근소할 때는 속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그림만큼은 분명하다.
다수가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다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사는 게 분명하다.

 

충분한 검토를 거치려면, 즉 오판하지 않으려면 대부분 수치로 된 데이터를 다음과 같이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1. "수를 비교하라"
중요성을 오판하지 않으려면 수를 하나만 갖고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로 숫자 하나만 달랑 남겨두지 마라. 절대로!
하나의 수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믿으면 절대 안된다.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가 필요하다. 

2. "80/20 법칙"
비율을 왜곡하기는 매우 쉽지만, 다행히 그것을 막을 쉬운 해결책이 있다.
나는 많은 수를 비교해야 할 때,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야 할 때 가장 쉬운 생각 도구를 이용한다. 
가장 큰 수를 찾는 방법이다. 이것이 '80/20 법칙'의 전부다. 

3. "수를 나눠보라"
큰 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흔히 그 수를 총합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견해를 볼 수 있다.

나는 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 광팬이긴 하지만, 데이터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에도 한계가 있다. 나는 데이터가 수치 이면의 현실, 즉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만 데이터를 좋아한다. 
연구를 하다 보면 가설을 실험할 때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가설 그 자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중에 나올 때가 많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수치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수치만 분석해서 얻은 결론은 의심해봐야 한다.
세계는 수치 없이 이해할 수도,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국가는 정부 없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지만,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공공 부문도, 민간 부문도 늘 정답일 수는 없다. 사안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두루 택해야 한다.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지만 데이터를 100% 신뢰하지 말라고 하는 책...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10가지 오해는 별도로 정리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밑줄긋기

내 생각에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려는 본능인데,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영웅과 악인,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것은 간단하고 직관적일 뿐 아니라,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항상 그런 구분을 한다. 

인구 성장이든 그 밖의 다른 상황이든 항상 직선을 상상하는 본능을 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세상엔 여러 형태의 곡선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것을 직선이 아니라 S자 형태, 미끄럼틀 형태, 낙타 혹 형태 같은 곡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부분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이야기가 있는 정보, 즉 극적으로 들리는 정보다. 

4장에서 나는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방사성물질 유출(0%), 테러(0.05%)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루었다. 이 중 연간 총사망자의 1%를 넘는 경우는 없지만, 여전히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는다. 
사망률이 낮더라도 당연히 더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공포 본능이 우리의 관심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공포 본능을 누르고 실제 사망자 수를 따져봐야 한다. 

콩고와 탄자니아에서 선교하며 간호사로 일하다 내 멘토가 된 잉에게르드 로트의 말이 생각난다. 
로트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찢어지게 가는한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좋은 곳에 쓸 자원을 훔치는 꼴이니까요."

뉴스에 수치 달랑 하나만 나오면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경보음이 울린다. 
그 수를 무엇과 비교해야 할까? 그 수가 1년 전에는 어땠을까? 10년 전에는?
비교 가능한 나라나 지역은 어디일까? 어떤 수로 나눠야 할까? 이 수와 관련된 총합은 무엇일까? 
1인당으로 환산하면 몇일까? 나는 이런 여러가지 비율을 비교한 뒤라야 그것이 정말 중요한 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우리가 모든 주제, 모든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무슨 말로 묘사하겠는가.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지금의 그 상태인 것은 피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유 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은 늘 그 상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를 불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연간 변화가 1%에 그쳐도, 너무 적고 느리다는 이유로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 보라.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기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나는 전문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가장 분명한 한계는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점이다.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최근에 내가 이 본능을 느낀 것은 호텔에서 샤워를 할 때였다. 
온수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초 지나 쩔쩔 끓는 물이 쏟아져 살을 데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배관공에게 화가 치밀었다. 이어서 호텔 지배인, 그리고 찬물을 쏘고 있을지 모를 옆방 투숙객에게 차례로 화가 났다. 
하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누구도 내게 고의로 해를 끼치거나 태만하지 않았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수도꼭지를 천천히 돌리기 못한 내 잘못이었다. 

비난 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쁜 사람을 찾아내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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